"쳇GTP로 인해 강의가 힘들어졌다" 모 대학에 출강하고 있는 어느 지인이 필자에게 한 예기다. 그의 말대로 강의를 하는 교수의 말보다 쳇GTP를 더욱 신뢰하는 상황에서 의욕이 상실된다는 푸념이었다. 그야말로 본격적으로 AI 시대에 돌입한 것이다. 그만큼 인간이 할 일이 점점 없어진다는 예기다. AI가 인류의 구원인지 위기인지는 지금은 아무도 모른다. 우선 가장 화두는 향후 재앙 수준의 실업율을 어떻게 감당할 수 있겠느냐의 관점이다.
AI로 인해 사라질 직업은 가늠할 수 조차 없다. 단순 노동자들이나 데이터 입력이 주업무인 사무직은 물론, 스마트 팩토리나 로봇 자동화 시스템으로 조립 과정이 중요한 제조업 또한 자유로울 수 없다. 이미 고객 서비스 및 콜센타는 AI 쳇봇으로 대체되는 과정이고, 심지어 운전 및 배달직 관련된 직종도 자율 운전차 개발 속도에 따라 곧 대체될 것이다. 변호사나 회계사 심지어 의사 등 전문직까지도 처지는 다를 바 없다. 그들보다 훨씬 더 똑똑하고 지식이 방대하다는 것이 확고한 의견이다. 특히 심각한 건 가뜩이나 심각한 청년 실업율을 더욱 떨어뜨릴 수 있다는 예측이다. 실제로 AI 노출이 높은 서비스업과 프로그래밍, 방송업, 출판업 등에서 청년 고용이 대폭 줄었다는 분석 결과다. 그만큼 AI 가 절대로 대체하지 못할 인간 고유 능력이 매우 중요해진 것이다.
생산 분야에서의 AI 로봇의 활용은 매우 중요한 화두로 떠올랐다. 특히 현대자동차의 경우 매년 노조와의 갈등으로 발생하는 심각한 생산성 저하와 수익성 악화 등의 문제를 해결할 대안으로 노동 현장에 투입할 AI로봇 개발에 회사의 명운(命運)을 걸 정도다. 이는 기업의 미래 전략은 물론 국가 경쟁력에도 매우 중대한 사안이다. 필자는 현대자동차를 34년 다닌 관리자 출신으로서 이 부분에 있어서 전적으로 동의한다. 고용 측면에서는 안타까운 일이지만 그동안 사회적 약자를 자처하면서 상생을 외면했던 귀족 노조의 상징 민노총의 자업자득인 셈이다.
그리고 가장 심각하게 우려하는 분야는 종교계다. AI는 철저히 광범위한 통계학이 바탕이다. 누군가 잘못된 종교 이론을 자속적으로 발표하고 지입시킨다면 그것이 마치 정론인양 혼돈에 빠뜨릴 수 있기 때문이다. 이른바 이단이 횡행함으로써 기존의 종교계가 흔들릴 수 있으며, 그런 상황은 신념의 문제이기 때문에 예전의 종교 전쟁처럼 참혹한 결과를 초래할 수 있는 것이다.
또한 더욱 정교하고 교묘한 범죄가 가속화될 전망이다. 이 부분은 사실 재앙에 가깝다. 사진이나 심지어 영상 제작에서 페이크(Fake) 수준은 정말 혀를 내두를 정도다. 실제로 AI기술을 이용한 합성 사진으로 인한 성 범죄 피해는 계속 속출하고 있고, 앞으로 더욱 급격히 증가될 것이다. 또한 영상뿐만 아니라 음성도 노출된 2~3초 분량만으로도 95%까지 구분을 못할 딥보이스 수준으로 올라와 있어 보이스 피싱 범죄에 걸리면 피해자의 직업이나 학력과 상관없이 열이면 열 모두 피해를 보는 실정이다.
다만, 그나마 한 가지 희망적인 것은 창작 분야다. AI로 대체될 수 없다는 확고부동한 믿음이 있기 때문이다. 예술로 승화한 정신적 가치 즉, 예술혼을 과연 AI가 구현할 수 있느냐의 의구심이다. 인간의 공감 능력도 기대할 수 없다. 그로 인해 예술 창작 만큼은 생존할 가능성이 제기되고 있는 것이다. 필자는 시인으로서 다행스런 예측이 아닐 수 없다. 마음을 움직이는 감성적인 부분에서는 감히 AI가 넘볼 수 없는 영역으로 판단하는 것이다. 따라서 AI가 만든 창작물을 예술로 인정할 수 없다는 것이 대체적인 중론이다. 기존의 창작물을 혼합하여 만든 최고의 모작(模作)일 뿐이기 때문이다. 이것저것 짜집기해서 만든 AI 작품을 버젓이 자신의 작품으로 내놓을 경우 저작권 시비에 걸릴 뿐만 아니라 그런 작품을 저작권으로 보호할 수 있을지도 의문이다.
AI의 근본적인 위험성은 휴먼노이드(Humanoid)에서 발생하는 문제에서 비롯된다. 로봇에게 인간의 감성을 요구한다는 것은 어불성설이다. 예를 들어 자율 운전 자동차가 완전히 실현되었을 경우, 사고가 발생할 수 있는 위급한 상황에서 차량 전면의 좌측에 어린이 1명이 놀고 있고, 우측에는 노인이 애견과 산책 중이었으며, 또 차 안에는 성인 두 명이 타고 있었다면 과연 AI는 어느 쪽의 안전에 최선을 다할 것인지 알 수 없는 것이다. 감성적으로 또 이성적으로 종합 판단하는 인간의 영역에서 한참 벗어나 있기 때문이다.
지금도 인간의 사고 기능은 스마트폰 개발 이후 빠른 속도로 쇠퇴하고 있다. 향후에는 스마트 폰보다 훨씬 광범위하고 지능적인 AI 출현으로 인해 전혀 생각을 하지 못하는 인간의 보편적 상황에 놓이게 될 것이다. 이는 간단한 문제가 아니다. 노인의 전유물이었던 치매나 기억력 상실 등 지적 사고 능력 저하가 모든 세대에 걸쳐서 발생하면서 결국은 뇌성 마비 수준으로 악화될 가능성을 우려하는 것이다.
필자가 가장 안타깝게 생각하는 건 학자이자 철학자로서 공자가 말했던 '아침에 도를 깨우치면 저녁에 죽어도 여한이 없다(朝聞道, 夕死可矣)'라는 최고의 가르침이 AI의 등장으로 인하여 한 순간에 다 소용이 없어져 버린다는 사실이다. 인간이 스스로 도를 닦고 학습하는 일을 무의미하게 여기고 심지어 한심한 시간 낭비쯤으로 전락시키는 상황을 우리는 어떻게 이해할 수 있을까.
분명히 장단점은 존재한다. 그로 인해 AI개발자에 대한 공과(功過) 또한 평가 받아야 마땅하다. AI에 전적으로 의존하는 시대로 인하여 인류가 이룩해 온 모든 분야에서의 열정과 장인정신은 쇠퇴할 것이다. 그로 인한 가치관의 혼란이야말로 무엇보다 큰 위기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지금까지 인간이 큰 변혁기에서 잘 버텨 왔듯이 AI로 인한 큰 위기를 딛고 인류의 새로운 도약이 이루어질 것이라고 필자는 믿어 의심치 않는다.
결국 문제 해결의 열쇠는 인간에게 달려 있다. AI는 여러가지 불순물의 혼합체인 공기와 같다. 따라서 불순물을 거르는 건 결국 문해력이나 정보 이해 능력을 지칭하는 인간의 리터러시(Literacy)를 최대한 발휘하여 가장 안전하고 정확하게 또한 선한 영향력을 극대화시키는 방향으로 실행시키는 것 밖에 방법이 없다. 그것만이 인간 최대의 걸작인 AI를 향유하는 유일한 길인 것이다.